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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회사에도 고객지원팀이 있다

다익스트라의 가상 회사에서 수학자들이 고객지원으로 옮겨간다는 대목을 읽고, 결과물을 만든 다음의 일을 생각했다.

문서 폴더가 쌓인 초록색 창구와 황동 종, 앞에 펼쳐진 빈 폴더

증명도 출시하고 고친다

다익스트라가 지어낸 회사에서는 증명도 출시한다. 첫 버전에는 오류가 남아 있고, 고객이 문제를 보내오면 다음 버전에서 고친다. 수학 회사의 이야기인데 익숙한 제품 출시 풍경처럼 읽힌다.

1974년의 가상 연설에 나오는 회사 이름은 Mathematics Inc.다. 실제 기업의 역사가 아니라 다익스트라가 꾸민 풍자다.

이 회사의 1975년 편지에는 더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쏟아지는 문제 보고를 처리하려고 수학자 쉰 명을 생산 부서에서 현장 지원으로 옮긴다. 잘 만들어내던 사람들이, 이미 내보낸 것을 돌보는 쪽으로 간다.

그 장면이 오래 남는다. 새로운 결과를 만드는 일은 앞에서 잘 보인다. 누군가 그 결과를 쓰다가 질문했을 때 답하는 일은 조금 뒤에 있다.

AI로 만든 결과물을 넘길 때도 그 뒤쪽 자리를 미리 생각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만들어진 뒤에 오는 질문

가령 AI가 사내 분석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해보자. 문장은 읽을 만하고 표도 채워졌다. 파일을 전달했다. 그런데 읽던 동료가 한 칸을 가리키며 묻는다. 이 수치는 어느 기간을 기준으로 잡았느냐고.

그 질문이 왔다고 보고서 전체가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자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이 더 필요할 수 있다. 실제로 잘못 집계했다면 수정도 해야 한다.

이것은 가상의 상황이다. 여기서 상상해 보고 싶은 것은 보고서를 생성하는 화면보다, 그 질문을 받은 사람이 여는 화면이다.

그 사람에게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보고서 파일만 있을까. 사용한 원본과 계산 방식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어느 부분을 고치면 되는지 찾아볼 수 있을까.

보고서를 다시 생성하는 버튼은 있어도, 무엇 때문에 다시 만들어야 하는지 알 수 없으면 일이 길어진다. 질문 하나를 받으려고 보고서 전체를 처음부터 읽어야 할 수도 있다.

처음 파일이 나온 시간만 재면 그 뒤의 작업은 잘 보이지 않겠다. 다익스트라의 회사에서 생산하던 사람을 지원으로 옮긴 장면이 다시 떠오른다.

지원은 남는 일인가

이 가상의 보고서 작업을 맡긴다면, 전달할 결과물 옆에 질문을 받을 자리를 남기고 싶다. 담당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고, 그 사람이 원본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질문을 받은 쪽도 새 답을 그럴듯하게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지 않았으면 한다. 먼저 전달한 보고서의 어느 칸을 이야기하는지 맞춰보는 편이 좋겠다. 서로 다른 파일을 열어놓고 설명하면 대화가 이상하게 길어진다.

오류를 확인해 고쳤다면, 바뀐 내용을 알려줄 일도 생긴다. 새 파일을 만들었다고 예전 사본이 저절로 바뀌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어느 자료를 계속 써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런 일을 전부 나중에 남는 시간에 맡기면, 결과물을 빨리 만드는 쪽만 계속 바빠질 것 같다. 빨리 만든 자료를 편하게 쓸 수 있게 하는 일에도 자리가 필요하다.

창구 앞의 빈 의자

수학 회사의 풍자를 AI가 수학을 완전히 자동화했다는 예언으로 읽고 싶지는 않다. 이 글이 내게 남긴 것은 조직이 결과물을 팔고, 돌보고, 다시 만드는 모습을 수학으로 옮겨놓은 이상한 익숙함이다.

새로운 결과를 더 만들 수 있게 됐을 때, 다음 질문을 감당할 사람도 함께 준비됐는지 묻게 된다. 여기서 생산과 지원에 얼마씩 배정해야 하는지까지 답할 수는 없다. 실제 질문과 수정 작업을 봐야 할 것이다.

가상의 보고서로 돌아가면, 파일을 보낼 때 붙일 문장이 하나 더 떠오른다. 내용에 질문이 생기면 어디로 돌아오면 되는지.

책상 위의 결과물 더미가 보기 좋게 쌓여 있다. 그 옆 창구의 종이 울리면 누가 일어날지도 정해두고 싶다.

참고한 자료